마음에도 정리 정돈이 필요하다
사진=픽사베이
최근 우리 생활에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에서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1960년대에 생겨난 예술 영역의 한 흐름에서 시작했지요. 복잡하고 어려워만 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일종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을까요. 미니멀리즘은 미술, 음악, 건축 등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생활 영역에까지 그 가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함을 추구합니다. 집을 장식한다 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품이나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도구들은 제쳐놓고, 우리 삶에서 꼭 필요한 것만 남겨놓으라 합니다. 그 외에는 모두 넘치는 것, 불필요한 것이 되는 셈이지요. 생활 방식에서도 복잡한 일과나 불필요한 루틴은 모두 덜어내고, 단순한 삶을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미니멀(minimal)하게 바뀐 삶은 기름기를 뺀 음식처럼 스트레스는 줄고 한결 담백해집니다. 생각해보면 현대인들은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짐들이 너무나 많지요. 과거 원시인들이 식량을 구하고, 잠잘 곳을 정하는 데 받았던 스트레스보다 수십, 아니 수백 가지 더 많은 고민을 떠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 또한 미니멀리즘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게 널브러진 옷가지며 물건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또 필요 없어진 어떤 것은 버리기도 하지요. 주변을 정리정돈하며 자신의 삶 또한 가지런해집니다. 또, 정리정돈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한 밑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흐트러진 책상에서는 책을 읽을 맛이 나지 않듯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주변의 정리정돈이 꼭 필요하겠지요.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의학과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다고는 하지만, 겨우 100세를 넘기 힘들지요. 봄을 맞이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잠깐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낙엽 떨어지는 가을입니다.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인간은 그 짧은 인생에도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접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짧은 기간에도 마음에는 불필요한 것들이 끝도 없이 쌓여갑니다. 대부분 사람은 그 찌꺼기를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알아차리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다락에 무작정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리지요. 너무 많기도 하거니와, 들추어보기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정작 우리 마음을 정리정돈하지 못한 채 세월의 재촉에 등 떠밀려 앞으로만 걸어갈 뿐입니다. 언젠가는 해야지, 언제 여유가 생기면 잘 생각해봐야지 하다 시간을 다 보내지요. 온갖 것들이 주변을 흐트러지게 하고, 마음의 다락에서 때론 악취가 풍겨 나와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마음을 들추어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해묵은 기억과 감정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지요. 또 다른 이는 충격적인 기억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닙니다. 이별의 기억이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 괴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잘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자신을 괴롭히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잘 정리정돈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주도성을 읽고, 체념하며 '살던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웰빙(well-being)도 중요하지만, 웰다잉(well-dying)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죽음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일은 어깨에 짊어진 고민을 조금은 덜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늙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두 가지 단계
시작하는 데 있어 나쁜 시기란 없다 - 프란츠 카프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인간의 마음은 실체가 없기에 그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지요.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실은 자신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지금 내 시야는 내 발밑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숨 고르기하며 몇 미터 정도는 앞을 비추어 살필 수 있는 여유가 꼭 필요합니다. 그 여유는 한참 시간이 지나거나, 특별한 어떤 지점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낼 수 있지요. 단언컨대,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입니다.
준비가 되셨나요?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데 있어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진 않아요. 그저 약간의 여유, 펜과 종이 정도가 다입니다. 쓰는 것이 귀찮다면 스마트폰의 메모 앱을 열어 두어도 좋습니다. 먼저 제일 위에 자신을 괴롭혔던 해묵은 감정과 기억을 적어보세요. 가능한 한 상세하게 적는 것이 좋아요. 너무 단순화하는 것은 불편함에 대한 무의식적인 회피(avoidance)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편한 마음이 들거나, 기분 나쁜 기억이 떠올라 그만두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이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입니다. 오랫동안 쓰레기를 쌓아놓고 청소 한번 한 적 없는 마음의 다락에서 나는 체취가 향기로울 수 있을까요? 악취가 나도 코를 쥐어 싸고, 앞에 쌓인 것들을 조금씩 분류해보는 겁니다. 자신의 고통이 엄청나다 여기는 사람도, 막상 이를 기록해보면 채 한 바닥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로 생각한 내용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 또한 중요합니다. 기록하기의 힘이지요.
그다음은 각 항목이 내가 애를 써 바꿀 수 있는 것인지, 혹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애쓴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애초에 마음의 다락에 넣어놓지도 않았을 테죠. 아마도 대부분의 해묵은 기억과 감정은 지금 바꾸기엔 너무 늦었거나, 애초에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가요? 해묵은 짐들의 실체를 확인하고, 사실 이것들이 내가 애쓸 필요도 없고,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지 않나요? 물론 기억은 뇌의 기억 중추 깊은 곳에 부호화되어 저장되어 있어, 기억과 관련된 단서(cue)를 만나면 당시의 불편함,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바꿀 수 없는, 애초에 할 수 없었던 것을 붙잡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요. 또 불편함을 애써 피하고 마음 안의 다락에 또 쌓아놓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따금 다락을 열어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는 과정도 꼭 필요합니다.
걱정했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쓰레기통으로 직행해도 될 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면, 본격적으로 마음의 정리정돈이 시작된 겁니다. 그렇게 해묵은 마음의 짐 몇 가지는 정리해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 괴테
해묵은 짐들을 덜어낼 수 있었다면, 정리정돈의 다음 단계는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겁니다. 현대 심리치료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고 있는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commitment therapy)에서는 삶의 가치(value)를 이야기합니다. 가치란 자신의 삶에서 중요시하는 것, 삶의 방향을 뜻하지요. 가치는 살아가며 획득하는 특정한 목표점과는 다릅니다. 삶의 방향에 가깝지요. 이를테면 '10억의 자산, 외제차, 유명한 학자가 되기'는 삶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들은 이룰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만 삶 전반을 관통하는 화두와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흐르는 강이라 한다면, 작은 지류에 불과합니다. 또,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 방향성이 사라져 또 다른 목표들이 필요하지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내일 걱정하는 일이 모두 사라지면 당신은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이라고 한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당신의 중요한 가치가 되겠네요. '휴식 취하기'라면,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의 방향이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내일 당장 당신이 사망한다면,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으로 회자되고 싶은가?'입니다. 자신이 삶의 여정을 끝낸 후,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과연 자신을 어떻게 기억해주기를 바라나요? 당신이 떠올렸던 그 모습이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삶의 가치이며, 방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정리정돈하는 것은, 마음을 괴롭혔던 것들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는 한 시인의 말처럼 불편함을 마주하고 들추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삶이 번잡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느 한 지점에 묶여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때가 바로 삶을 정리정돈할 때일 겁니다.
원문 : 정신의학신문 : 신진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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